기억과 역사를 양극으로 보느냐 동일시하느냐 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첫걸음은 활성적 기억과 비활성적 기억의 관계를 회상기억의 두 가지 상보적 양태로 파악하는데 있다. 이런 의미에서 활성적 기억을 기능기억이라 명명하고자 한다. 이 기능기억의 중요한 특징은 집단 관련성, 선택, 관련 가치, 목적의식 등이다. 역사 학문들은 그것에 비하면 이차적 질서의 기억, 즉 현재와의 활성적 관계를 상실한 것을 기록한 기억들의 기억이다. 망각의 지속적인 수거만큼이나 흔한 것도 없다. 이는 가치있는 지식이나 활성적인 경험이 훼손되고 상실되는 것을 말한다. 역사학문들의 광활한 지붕아래 그런 비활성적인 유물들과 주인없게 되어버린 유품들은 보존되어 있을 뿐 아니라 다시 기능기억과 새롭게 연결될 가능성을 제공한다.
알라이다 아스만(2011), 변학수, 채연숙 역, 『기억의 공간』, 문화적 기억의 형식과 변천, 그린비, p.180~181
기능기억은 선택적이다. 그래서 그것은 항상 저장된 기억 내용의 토막만을 활성화한다.
알라이다 아스만(2011), 변학수, 채연숙 역, 『기억의 공간』 문화적 기억의 형식과 변천, 그린비, p.182
기억에서 의미가 담긴 요소들과 의미 중립적 요소들 사이의 차이를 알박스도 찾아냈다. 그에 따르면 회상이 집단적 기억으로 수용될 수 있는 전제 조건은 의미로의 전환이다. 예컨대 "모든 인격과 역사적 사실은 이미 그러한 기억으로 들어감으로써 학설이 되고, 개념이 되며, 상징이 된다. 그리고 그것은 의미를 갖게 되고 사회의 이념체계의 요소가 된다." 특정한 의미 구조의 자장 안으로 들어가는 회상들은 과거의 감각자료, 경험과 구분된다. 기억은 의미를 발생시키고 의미는 기억을 고정한다. 의미는 항상 구성의 문제이자 나중에 부과된 해석물이다. 그에 비해 저장기억은 '무정형의 덩어리'로 사용되지 않고 정돈되지 않은 기억의 마당이다. 이 기억이 기능기억을 둘러싸고 있다. 그러므로 스토리나 의미 구성에 잘 맞지 않는 것이라는 이유 때문에 단순히 잊혀지지는 않는다. 그 때문에 부분적으로는 의식되지 않는, 부분적으로는 무의식적인 이 기억은 기능기억에 대한 대립이 아니라 오히려 기능기억의 배경을 만든다. 전경과 배경의 모델은 상호 대립의 문제를 다룬다. 이것은 이제 더 이상 이원적으로 판단할 것이 아니라 관점으로 파악할 일이다. ~활성화된 요소와 그렇지 않은 요소들 사이에서 내적으로 교류하는 기억의 심층구조는 의식 구조 내에서의 변화와 혁신을 주도하는 조건이다. 이때 이 의식은 그러한 무형적 저장물의 배경없이는 고사하고 만다.
알라이다 아스만(2011), 변학수, 채연숙 역, 『기억의 공간』 문화적 기억의 형식과 변천, 그린비, p.183
개인적인 기억들이 실매듭, 그림, 리듬, 춤, 음악과 같은 육체적. 물질적 지주들로 강화되어 문화적 기억의 바탕을 형성하는 반면, 구비적 기억 문화에서는 기능기억과 저장기억을 구분할 수 없다. 기억의 공간은 매우 제한적이고 기억의 기술은 너무 힘이 들어서 집단 정체성을 위해 필요하지 않는 것, 그래서 존재에 필수 불가결하지 않은 것은 보존 문제로 고민할 일고의 가치가 없다는 것이다.
알라이다 아스만(2011), 변학수, 채연숙 역, 『기억의 공간』 문화적 기억의 형식과 변천, 그린비, p.184
집단적 영역에서 저장기억은 불필요하고 시대착오적이며 낯설어진 것, 중립적이고 추상적으로 정체성을 규정하는 사실 지식뿐만 아니라 선택되지 않은 가능성, 쓰여지지 않은 기회의 다양한 목록들을 가지고 있다. 그에 반해 기능기억은 선택, 연관성, 의미구성(또는 알박스의 말로는 틀의 형성)에서 생성되는 적용된 기억을 말한다. 구조없고 관련성 없는 요소들은 합성, 구성, 결합되어 기능기억으로 들어간다. 이런 구성적 행위에서 의미가 발생하게 되는데, 그것은 저장기억에는 근본적으로 소멸된 측면이다. 문화적 기능기억은 주체와 연결되는데, 그 주체는 문화적 기억의 보유자이거나 그것을 판단할 수 있는 주체를 말한다. 국가가 민족과 같은 집단적 행동 주체들은 기능 기억 위에 지은 집이다. 그리고 이 기능기억 속에서 특정한 과거를 만들어낸다. 반대로 저장기억은 정체성을 기반으로 하지 않는다. 그것의 적지 않은 본질적 기능은 기능기억이 허용하는 것보다 더 많이, 그리고 기능기억과는 다르게 보관하는데 있다. 꾸준히 증가하는 대규모 자료 기록, 정보, 기록물, 기억이 들어 있는 무제한의 기록물보관소에는 이런 것들을 구성할 수 있는 주체가 없다. 기껏해야 우리는 여기서 전적으로 추상적인 '인류의 기억'이란 이름을 붙일 수 있을 것이다.
알라이다 아스만(2011), 변학수, 채연숙 역, 『기억의 공간』 문화적 기억의 형식과 변천, 그린비, p.185